밤하늘의 별은 눈에 보이는 빛(가시광선)만 내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별과 은하, 가스 구름은 전파도 함께 내보내고 있습니다. 이 우주의 전파를 관측해 천체를 연구하는 학문이 전파천문학입니다.
우주 먼지에 가려진 별 탄생 영역, 아주 차가운 가스 구름, 규칙적으로 전파를 깜빡이는 펄서(pulsar)처럼, 가시광선으로는 보이지 않거나 관측하기 어려운 천체들이 전파로는 뚜렷하게 관측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파망원경은 광학망원경과 함께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전파망원경으로 아주 작고 먼 천체를 또렷하게 보려면 망원경 접시가 아주 커야 합니다. 하지만 접시를 무한정 크게 만들 수는 없겠죠. 대신 서로 멀리 떨어진 여러 전파망원경을 동시에 관측하게 한 뒤, 그 신호들을 정밀하게 합치면 마치 망원경들 사이의 거리만큼 큰 하나의 망원경으로 관측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을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라고 합니다.
망원경 사이 거리가 멀어질수록, 천체의 상(像)이 더 작고 또렷해집니다(분해능 향상).
1801년 토마스 영(Thomas Young)은 빛을 좁은 두 슬릿(틈)에 통과시키는 실험으로 빛이 파동임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의 빛이 두 슬릿을 지나면 마치 두 개의 새로운 파동이 퍼져나가는 것과 같아지고, 이 두 파동이 스크린에서 다시 만나면 위상이 맞는 곳은 밝아지고(보강 간섭) 위상이 어긋나는 곳은 어두워지는(소멸 간섭) 줄무늬, 즉 간섭무늬(interference fringe)가 나타납니다.
슬릿 사이 간격이 넓어지거나 파장이 짧아질수록(보라색에 가까울수록) 스크린의 간섭무늬가 더 촘촘해집니다.
전파천문학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다만 슬릿 대신 두 대의 전파망원경이, 스크린 대신 신호를 합치는 컴퓨터(상관기)가 그 역할을 합니다. 아래에서는 이중슬릿 실험과 같은 원리로, 두 전파망원경의 신호를 합쳤을 때 나타나는 간섭무늬를 살펴봅니다.
이중슬릿 실험에서 두 슬릿을 지난 빛이 만나 무늬를 만들었던 것처럼, 두 전파망원경에 도착한 같은 천체의 전파도 망원경 사이 거리와 별이 있는 방향에 따라 도착 시각이 아주 조금씩 다릅니다. 이 두 신호를 컴퓨터로 정밀하게 합치면, 위상이 맞을 때는 신호가 서로 더해지고(보강 간섭) 위상이 어긋날 때는 서로 상쇄되는(소멸 간섭) 간섭무늬(프린지, fringe)가 나타납니다. 이 무늬가 얼마나 촘촘한지, 어떤 모양인지를 분석하면 천체의 위치나 크기 같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기선이 길어지거나 관측 주파수가 높아질수록(파장이 짧아질수록) 간섭무늬가 더 촘촘해집니다.
각 전파망원경은 천체에서 온 미약한 전파 신호를 받아 디지털 데이터로 바꾸고, 아주 정밀한 수소 원자시계로 정확한 시각을 기록하면서 고속 저장장치에 저장합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망원경들이 같은 천체를 동시에 관측하면서도 각자 독립적으로 신호를 기록해 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데이터는 저장장치를 직접 옮기거나, 인터넷으로 실시간 전송하는 방식(e-VLBI)으로 상관처리 센터에 모입니다.
각 망원경에서 모인 데이터에는 천체까지의 거리 차이 때문에 생긴 아주 작은 시간지연(Δt)이 들어 있습니다. 상관기(correlator)는 이 시간지연을 정밀하게 찾아 보정한 뒤, 두 망원경의 데이터를 서로 곱하고 더해(상관 처리) 위상 차이를 측정합니다. 이 계산을 모든 망원경 쌍에 대해 반복하면, 마치 망원경들 사이의 거리만큼 커다란 가상의 망원경 하나로 관측한 것과 같은 자료가 만들어지고, 이를 다시 계산(영상 합성)하면 천체의 실제 모습을 담은 영상이 됩니다.
두 망원경 신호의 시간지연(Δt)을 측정해 위상을 맞추는 과정
여러 전파망원경의 신호를 합쳐 가상의 거대 망원경을 만드는 상관기
비유로 먼저 이해하기: 멀리서 터진 폭죽 소리를 두 사람이 듣는다고 생각해보세요. 폭죽에 더 가까운 사람은 소리를 먼저 듣고, 멀리 있는 사람은 조금 늦게 듣습니다. 두 사람이 각자 녹음한 소리를 나중에 나란히 재생하면 시간이 어긋나 있어 서로 다른 소리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늦게 녹음된 쪽을 조금씩 앞으로 당겨보면, 어느 지점에서 두 소리의 파형이 정확히 겹치는 순간이 옵니다. 상관기는 바로 이 "정확히 겹치는 지점"을 컴퓨터로 신호를 세기를 계산합니다.
상관기가 두 전파망원경의 신호를 시간 맞춤한 뒤 곱하고 누적해 가장 큰 상관값을 찾는 과정
보정 전 데이터 위상이 틀어진상태로 초기화, 자동 보정 지연된 값을 자동 보정, 상관처리 실행 두 신호를 곱한 결과
전파망원경 한 대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속도는 초당 1기가비트(Gbps) 안팎이며, 최근에는 이보다 훨씬 빠른 초당 8기가비트 이상까지 시험하고 있습니다. 여러 대의 망원경이 몇 시간씩 계속 관측하면 전체 데이터의 양은 수 테라바이트(TB)에서 많게는 수십 페타바이트(PB)에 이릅니다. 게다가 망원경 수가 늘어날수록 서로 짝을 지어 비교해야 하는 망원경 쌍(기선)의 수도 훨씬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에, 이 방대한 자료를 처리하려면 아주 높은 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합니다.
상관처리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관 계산 전용으로 설계한 하드웨어 상관기로, 한국천문연구원은 일본국립천문대와 함께 세계 최고 속도의 VLBI 상관처리 장치(한일공동VLBI상관기, KJJVC)를 개발해 최대 16개 전파망원경에서 들어오는 초당 1기가바이트의 자료를 실시간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DiFX와 같은 소프트웨어 상관기로, 일반 고성능 컴퓨터 여러 대를 연결한 클러스터에서 프로그램으로 상관 계산을 수행합니다. 전용 장비보다 유연하게 망원경 수나 관측 방식을 바꿀 수 있어서, 동아시아 전파망원경망(EAVN)처럼 참여 기관과 망원경 수가 계속 늘어나는 국제 공동 관측에 특히 유용합니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상관처리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영상 처리에 특화된 GPU(그래픽 처리 장치)를 상관 계산에 활용하는 추세입니다. 또한 관측 데이터가 계속 늘어나면서 한국천문연구원 자체 컴퓨터만으로는 처리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워져, 기초과학연구원(IBS)의 고성능 컴퓨팅 서버를 함께 활용해 상관처리 작업을 나누어 처리하는 협력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VLBI로 합성한 영상은 눈으로 보기 힘든 아주 작은 천체의 구조까지 보여줍니다.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은 마이크로퀘이사(작은 블랙홀 또는 중성자별과 별이 짝을 이룬 천체)의 밝기가 시간에 따라 여러 주파수에서 변하는 모습을 동시에 관측했고, 일본의 VERA 관측망은 별이 태어나는 지역(W75N)에서 나오는 물 메이저 가스의 분포가 1996년과 2014년 사이 원형에서 제트 모양으로 바뀌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KVN이 22GHz·43GHz로 동시에 관측한 마이크로퀘이사 Cygnus X-3
VERA로 관측한 별 탄생 영역 W75N, 1996년과 2014년의 물 메이저 영상 비교
VLBI로 합성한 영상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2019년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이 발표한 거대타원은하 M87 중심 블랙홀의 그림자 영상입니다. 지구 곳곳에 흩어진 전파망원경들을 하나로 합쳐 블랙홀 주변의 빛이 휘어져 만드는 어두운 그림자를 처음 영상으로 보여준 성과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연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KVN으로 M87 중심에서 뻗어 나오는 제트를 오랜 기간 관측해 왔고, 100~500km의 비교적 짧은 기선을 가진 KVN 자료를 더하면 EHT 혼자서는 알기 어려운, 블랙홀 그림자와 그 바깥의 제트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전파망원경을 연결하는 차세대 사건지평선망원경(ngEHT)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평창에 새 전파망원경을 세우는 등 관측 능력을 계속 키워가고 있습니다.
2019년 공개된 최초의 블랙홀 그림자 영상 (사진: EHT Collaboration)
2021년 공개된 편광 관측 영상 — 소용돌이 무늬는 블랙홀 주변 자기장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사진: EHT Collaboration)
같은 블랙홀이라도 관측을 거듭할수록 더 많은 것이 보입니다. 2019년 영상이 블랙홀의 그림자를 처음 드러냈다면, 2021년에는 같은 자료를 편광이라는 방법으로 다시 분석해 블랙홀 주변 자기장이 소용돌이치는 방향까지 밝혀냈고, 이는 블랙홀이 어떻게 강력한 제트를 뿜어내는지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관측하는 학문을 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