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에는 세기와 주파수 말고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정보가 하나 더 숨어 있습니다. 바로 전파가 어느 방향으로 진동하며 나아가는가, 즉 편광(polarization)입니다. 이 편에서는 천체가 우주로 내보내는 전파 자체가 어떻게 진동·회전하는지를 다룹니다. 편광 상태를 분석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자기장 구조나 성간 물질의 분포까지 알아낼 수 있어서, 편광 관측은 전파천문학의 중요한 도구로 쓰입니다.
전기장이 한 방향으로만 흔들리면(회전하지 않으면) 선편광, 진행하면서 방향이 원을 그리며 회전하면 원편광이 됩니다 — 즉 편광의 종류 자체가 "얼마나, 어떻게 회전하는가"로 구분됩니다. 게다가 전파가 우주 공간을 지나오는 동안에는 자기장·플라스마 때문에 편광 각도 자체가 서서히 회전(패러데이 회전)하기도 합니다. ①진동 자체가 원을 그리며 도는 회전과, ②전파가 이동하며 편광 각도가 돌아가는 회전 — 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사이트에서는 편파(polarization, 안테나 쪽 표현)와 편광(polarization, 전파 자체의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을 구분해서 씁니다. 같은 영어 단어(polarization)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지만, "안테나가 어떤 편파를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었는가"처럼 안테나(반사경)· 피드 혼 편에서는 편파라는 표현을, "천체가 내보내는 전파 자체가 어떤 상태인가"를 다루는 이 편에서는 편광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별이나 성운, 은하 등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전파는 대부분 여러 방향의 진동이 무작위로 뒤섞인 비편광(unpolarized) 상태로 방출됩니다. 이런 비편광 전파가 넓은 우주 공간을 가로지르며 성간 자기장이나 성간 먼지·플라스마를 만나면, 특정 방향의 진동만 영향을 받아 통과하거나 산란되면서 서서히 편광파로 바뀌어 갑니다. 한편 블랙홀 주변 제트나 초신성 잔해에서 나오는 싱크로트론 복사(synchrotron radiation)처럼, 방출되는 순간부터 이미 강한 편광을 띠는 방출 기전도 있습니다.
전기장의 진동 방향이 한 직선을 따라 흔들리면 선편광(linear polarization), 진행하면서 방향이 크기 변화 없이 원을 그리며 회전하면 원편광(circular polarization) 이라 부릅니다. 실제로는 이 둘이 양 극단인 경우이고, 전기장의 끝이 원도 직선도 아닌 타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타원편광(elliptical polarization)이 더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 선편광과 원편광은 타원편광의 특수한 경우(찌그러짐이 0이거나 완전한 원인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우주에서 오는 전파는 완전히 한쪽으로만 편광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비편광 성분과 편광 성분이 함께 섞인 부분 편광(partially polarized)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 천체의 전파는 선편광도가 5%다"처럼, 전체 신호 중 편광된 비율을 편광도(degree of polarization)라는 백분율로 표현합니다.
위에서부터 선형편파(직선 왕복), 원형편파(반지름이 일정한 원), 타원편파(길쭉한 원)입니다. 초록·빨강 화살표는 서로 수직인 두 전기장 성분 (수직·수평)이며, 이 두 성분의 크기 비율과 위상차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오른쪽 끝 그림처럼 직선·원·타원 중 어떤 궤적이 그려지는지가 정해집니다. 두 성분의 위상이 완전히 같거나 반대(0° 또는 180°)면 직선, 크기가 같고 위상차가 정확히 90°면 원, 그 사이의 위상차·크기 비율이면 타원이 됩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원편광은 전기장이 진행 방향을 축으로 코르크마개(스크루)처럼 회전하며 나아가는 편광이며, 회전 방향에 따라 우원편파(RHCP, Right-Hand Circular Polarization)와 좌원편파(LHCP, Left-Hand Circular Polarization)로 나뉩니다.
원편광된 전파를 한 순간 멈춰서 공간에 펼쳐 놓으면, 전기장 벡터의 끝이 진행 방향을 따라 마치 스프링(나선)처럼 이어진 모양을 그립니다. 이 나선이 실제로는 이동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방향만 계속 회전하는데, 그 회전이 앞으로 나아가는 파동과 합쳐지면 나선이 계속 오른쪽으로 나아가며 도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가 만들어집니다. 아래 애니메이션에서는 왼쪽 끝의 발생 지점에서 제자리 회전하는 막대로 이 전기장을 표현하고, 그 회전이 오른쪽으로 퍼져 나가며 나선형 파동을 만들어 가는 모습입니다.
👉 아래 버튼으로 우원편파(RHCP)와 좌원편파(LHCP)를 바꿔가며 회전 방향의 차이를 확인해 보세요!
왼쪽의 굵은 막대가 "발생 지점"에서 제자리 회전하는 전기장 벡터이며, 막대 뒤로 옅게 퍼지는 부채꼴은 막대가 방금 쓸고 지나온 회전면(면적)을 보여줍니다.
전기장 벡터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회전하는지를 8개의 순간(t1 → t8)을 보여주비니다. 관측자가 전파가 다가오는 방향을 마주 보고 섰을 때, 벡터가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우원편파,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좌원편파입니다.
점점 진해지는 화살표(t1→t8)는 전기장 벡터가 시간 순서대로 회전해 가는 모습을, 바깥쪽 굵은 곡선 화살표는 전체 회전 방향을 나타냅니다.
전파의 편광 상태는 스토크스 매개변수라는 네 개의 숫자 I, Q, U, V로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Q와 U를 함께 쓰면 선편광의 세기와 방향을 모두 계산할 수 있고, V는 원편광의 세기를 나타냅니다. Q=U=V=0이면 완전한 비편광, 이 값들이 I에 가까울수록 강하게 편광된 상태입니다.
선편광을 지도(map)로 나타낼 때는 하늘의 각 위치마다 짧은 막대(벡터)를 하나씩 그립니다. 막대의 방향은 그 위치에서 전파가 진동하는 편광 각도를, 막대의 길이는 그 위치의 편광 세기를 나타냅니다. 아래 그림에서 편광도를 바꿔가며, 무작위로 흩어져 있던 짧은 막대들이 어떻게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정렬된 긴 막대로 바뀌는지 확인해 보세요.
👉 슬라이더로 편광도를 높여가며, 벡터 지도의 막대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세요!
편광도가 0%에 가까우면 각 지점의 막대가 짧고 방향도 제각각인 비편광 상태에 가깝고, 편광도가 높아질수록 막대가 길어지면서 하나의 방향(여기서는 우주 자기장을 본뜬 가상의 방향)으로 가지런히 정렬됩니다.
편광된 전파가 성간 자기장과 플라스마를 통과하면, 편광 방향이 마치 나사처럼 서서히 돌아가는 패러데이 회전(Faraday rotation)이 일어납니다. 이 회전 정도는 관측 주파수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여러 주파수에서 편광 각도가 얼마나 돌아가는지를 비교하면(로테이션 측정, Rotation Measure)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자기장 세기와 방향까지 역으로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KVN처럼 여러 주파수를 동시에 관측하는 수신기는 이런 회전 측정에 특히 유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