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함께 협력해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 중 하나인 활동성은하핵(Active Galactic Nuclei, AGN)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순간을 포착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와지마 키요아키(Wajima Kiyoaki) 박사가 참여한 한국, 일본, 미국, 이탈리아 4개국 국제 공동연구팀은 활동성은하핵 ‘3C 84’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제트 분출로 만들어진 전파엽(葉)* 탄생의 순간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한국천문연구원의 한국우주전파관측망(Korea VLBI Network, KVN)과 일본국립천문대의 일본우주전파관측망(VERA Array)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7개의 전파망원경으로 구성된 한일공동 우주전파관측망(KVN and VERA Array, KaVA)을 활용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활동 은하 3C 84의 5년간의 장기 정밀 전파관측을 통해 밝혀냈다.
관측 결과 3C 84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블랙홀에서 분출된 제트 끝 지점의 열점(hotspot)*이 돌연 2016년 7월부터 2017년 말까지 약 1년 동안 움직임을 멈췄다. 2018년부터 열점과 그 주변의 전파엽이 다시 움직임을 시작하다 이후 열점은 사라지고 전파엽의 모양은 일그러지며 밝기 역시 감소했다. 연구진이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 현상은 초대질량블랙홀에서 분출된 제트가 주변의 고밀도 가스와 격렬하게 충돌하며 활동성은하핵의 전파엽 진행과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주는 것임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3C 84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블랙홀에서 불과 4광년의 거리에 있는 전파엽 움직임 관측을 목적으로, 한일공동 우주전파관측망(KaVA)의 43GHz 주파수 대역을 이용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거의 매달 관측했다. 연구팀은 또한 고해상도 전파 관측이 가능한 미국 국립전파천문대의 VLBA(Very Long Baseline Array) 관측자료를 함께 활용해 관측 정밀도를 높인 영상을 확보했다.
3C 84는 지구에서 약 2억 3천만 광년 떨어진 페르세우스자리 은하단의 중심부에 있는 활동 은하(active galaxy)이다. 특히 활동 은하 중심부인 활동성은하핵은 다양한 파장에서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대부분의 활동 은하 중심에는 태양의 수백만 배에서 수백억 배 질량에 이르는 초대질량블랙홀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초대질량블랙홀은 막대한 중력 에너지에 의해 주변 물질이 빨려 들어가고 그 중심에서는 빛의 속도에 가깝게 물질을 내뿜는 강력한 제트가 분출된다.
2005년 3C 84 은하 중심부의 활동성은하핵에서 제트가 막 분출되는 것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3C 84 은하를 정밀 관측함으로써 초대질량블랙홀의 제트로부터 초기 전파엽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으므로 이번 성과는 블랙홀 제트와 주변 물질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진화를 새롭게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천문연 와지마 키요아키(Wajima Kiyoaki) 박사는 “활동성은하핵의 강력한 제트를 막을 수 있을 만큼 밀도가 높은 가스가 블랙홀에 매우 가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이 천체의 기이한 성장 과정을 자세히 관측함으로써 활동성은하핵과 제트의 신비로운 형성과정을 풀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천문연 전파천문본부장 김기태 박사는“이번 연구 결과는 한일 공동 우주전파관측망인 KaVA의 세계적인 성능을 입증한 것이다”며, “이번 관측 결과를 토대로 중국, 이탈리아 전파망원경까지 추가로 결합해 더욱 향상된 해상도의 초대형 동시 관측망을 활용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활동성은하핵의 진화 과정을 지속해서 밝혀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활동성은하핵 중심의 초대질량블랙홀에서 분출된 고에너지의 제트가 주변의 고밀도 가스와 격렬하게 충돌하며 만드는 거대 규모의 빛나는 영역. 보통 활동성은하핵 양쪽에 위치한 대칭 구조이며 전파 파장에 해당하는 빛이 나뭇잎 모양으로 형성되어 ‘전파엽’이라 부른다. 보통 그 크기가 은하 자체보다 훨씬 크다.
열점(hotspot)
전파엽 내 고에너지의 가장 밝게 빛나는 부분이며, 활동성은하핵에서 분출되는 제트의 끝에 발생한다.
전파은하(radio galaxy)
우리은하보다 수백 배 이상 강한 전파를 방출하므로 전파 은하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심의 활동성은하핵에서 뻗어 나온 제트(jet)가 양 끝에 뭉쳐서 전파엽(radio lobe)라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대칭적 모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핵과 로브, 관측자가 일직선을 이루는 방향에서 관측할 때는 그냥 핵만 뚜렷한 모습으로 보인다. 전파를 방출하는 하나의 전파엽 크기는 보통 200광년 정도로 눈으로 보이는 은하 크기의 두 배 이상이 되고, 한쪽 전파엽 끝에서 반대편 전파엽 끝까지 1,000광년을 넘는 규모인 은하도 적지 않다. 전파엽에서의 전파방출은 싱크로트론 과정에 의한 것이다. 싱크로트론은 고속으로 움직이는 전자가 자기장을 따라 운동하면서 복사를 방출하는 현상인데, 이때 전파엽 내의 고속으로 가속된 전자는 장갑차를 뚫는 포탄처럼 고에너지를 갖는다. 또한 전파엽 내부에는 제트의 가장 끝점에서 강한 전파 복사인 열점(hotspot)이 존재하기도 한다.
한일 공동 우주전파관측망 KaVA(KVN and VERA Array)
한국천문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 KVN(Korean VLBI Network)과 일본국립천문대가 운영하는 VLBI 관측망 VERA(VLBI Exploration of Radio Astrometry)가 결합한 한일 공동의 VLBI(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er) 관측망이다. 즉 서울 연세대, 울산 울산대, 제주 탐라대에 설치된 21m 전파망원경 3기로 구성된 KVN과 일본 미즈사와, 이리키, 이시가끼시마, 오가사와라에 설치된 20m 전파망원경 4기로 구성된 VERA가 결합한 7기의 전파망원경에 의한 VLBI 관측망으로 그 가장 긴 거리(미즈사와부터 이시가끼시마)인 약 2,300km 직경에 해당하는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KaVA는 2010년 한국천문연구원과 일본국립천문대 사이 VLBI 상호협약에 의해 구축되었다. 그간 시험 관측 단계를 거쳐 현재는 한국,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천문학자들과 공동 이용 중이다.